야생화로 맺은 인연

‘관지모’ 대표이신 아버지는 관악산 생태계가 파괴되고, 야생화마저
고사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야생화를 심으러 가던 날, 꽃 한 포기 심어
본 적 없는 나를 반 강제로 데리고 갔습니다. 난생 처음 하는 호미질이라
서툴고 힘들었지만 어찌나 흐뭇하던지요. 이름도 모르고 구경도 못했던
꽃잔디, 금낭화, 별개미취, 제비동자, 앵초, 매발톱, 동자꽃, 노루귀,
꽃창포, 초롱꽃, 은분취, 꽃무릇을 종류별로 색채별로 구분하여
줄줄이 화단을 꾸몄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던 회원들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환희의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흐뭇하고 가슴 짜릿한 감정은
처음 느껴 봤습니다. 그리고 그날 서른 된 처녀가 첨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운 좋게 나비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꽃 심을 자리를 만드는 남자 일손이 모자라 애태울 적에 등산객 몇이서
작업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서 삽질하던 한 청년이
나를 쳐다보면서 “미모의 여인이 예쁜 꽃을 심으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는 말을 건넸지요. 그 말에 나는 그만 넋 나간 사람이
되어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게 될 줄이야.

그해 가을에 혼례를 치르고 해외로 떠나려던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결정하여
그 비용으로 더 많은 야생화를 심어 달라고 아버지께 드렸더니,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우리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설악산 가기 전에 우리들이 만났던 관악산 입구 야생화단지에 찾아갔더니
현란하게 피어난 야생화 밭을 가족사진에 담느라 북새통을 이뤄 그 틈새를
비집고 우리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담에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네 엄마가 이 야생화 밭을 만들었노라’고 자랑하렵니다. 꽃을 모르고
살아온 내가 관악산 야생화 밭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경선 님 / 서울 강서구 화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