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마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다들 그랬던 것처럼 공부보다는 먹고
사는 일이 더 큰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1남 4녀중 장녀였던 저는
제 소망을 접고 집안과 동생들을 위해 상고에 입학했고, 3년 내내
열심히 공부해 은행에 취직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대학 입시 때만 되면 전 혼자 울곤 했습니다. 대학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야 그렇게도 소망했던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업체 위탁생' 전 이때다 싶어 남편에게 얘기했는데 남편은
반대를 하더군요. 어쩌면 우리 사정에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지만,
괜한 서러움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곤 더 욕심 부리지 않고 단념했지요.

그런데 원서접수 마감을 하루 앞두고 남편이 갑자기 학교를 가라고
그러더군요. 전 반가운 마음에 두말하지 않고 원서를 접수했고, 얼마 뒤
입학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이젠 등록금이 걱정이었습니다. 마감일은
다가오고 영수증만 보면 한숨만 절로 났습니다. 남편 역시 마감날까지도
아무 말이 없더군요. 저는 그날 아침 눈을 뜨며 두번째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서랍을 여니 이미 등록금이 납부된
영수증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저 몰래 등록금을 내고는 그렇게
영수증만 몰래 넣어 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꿈같은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너무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대신 아이들 챙겨 주고 언제나 저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이지만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 학년을 마감하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영숙 님 / happy-6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