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아이랑

작년 여름 어느 날, 우리 미용실에 한 젊은 남자가 다녀갔는데,
다음날,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입니다" 하는 밝은 인사에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어제 그 남자였다. 아들이라는 그 아인 한 다섯 살쯤 되어 보였는데,
알아서 자리에 앉더니 "아줌마 예쁘게 잘라 주세요" 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또래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에 놀라 "어머! 어쩜 말을 그렇게 잘 하니?
어디서 배웠어?"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하는데,
그 남자가 얘기한다. "아이가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요.
" 역시 아이는 머리를 다 자를 때까지 얌전했다. "안녕히 계세요." 문을 나서면서
인사를 하는데 깍듯이 허리까지 굽힌다. 문 밖까지 배웅하며
'요즘도 저런 아이가 다 있네'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리고 한달 뒤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왔다. 그런데 그녀의 걸음걸이가 위태롭다.
두 다리가 안쪽으로 심하게 휘어진 데다 한쪽 팔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가
머리핀 빼는 걸 도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좀 오래 걸리긴 했어도 혼자 핀을
빼 거울 앞에 올려 두었다.

"아이가 참 어른스러워요." "네, 좀 그래요."

그녀가 조심스레 얘기한다. 엄마가 남들과 다르니 자신이 지켜 주어야 한다며
웬만한 집안일은 모두 돕는단다. 얘기를 다 듣고 나니 그들은 진정한 가족인데,
괜히 나만 안쓰러워했다. 컷트가 다 끝나갈 무렵 아이가
염색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옆집 아이가 부분 염색을 한 것 같더니 그걸 본 모양이네요" 하며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난 얼른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잡아 염색을 해 주었다. 다 끝나자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몸의 균형이
깨어질까 봐 조심조심 걸음을 뗀다. 엄마와 맞잡은 아이의 손이 따뜻하다.
아니, 내 가슴이 더 따뜻해졌다.

김인숙 님 / kukga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