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타스와 바니사탕

지난 크리스마스였다. 건너 동에 사는 5살 난 조카녀석이 아침 일찍 전화를 해서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자기네 집에 오면 산타가 보내 준 카드도 보여
주겠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조카의 자랑을 들으며 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난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우리는 다섯 살 많은 오빠와 세 살
어린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삼남매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는 머나먼
사우디로 일을 나가셨고, 그런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며 엄마도
공장에 일을 다니셨다. 그래서 어린 우리들을 돌보는 건 오빠 몫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빠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우리 중에 유일하게 용돈을 받았다.
용돈이라야 겨우 버스요금 정도였는데, 난 오빠가 그 차비를 아끼고 한 시간이
넘는 먼 길을 거의 매일 걸어다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마침 그날밤 엄마는 야근이었기 때문에
우리집은 다른 때보다 더 고요했다. 어린 맘에 난 얼마나 심통이 나고 속상했던지
동생을 부추겨 철부지 짓을 했다. 다른 집엔 다 오는데 왜 우리집에만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냐며 한참 투정을 부리고는 양말을 머리맡에 걸어
두고 잠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침, 비어 있을 게 뻔한 걸 알면서도
일어나자마자 머리맡 양말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연필 한 타스와
바니사탕 한 봉지씩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애써 표정을 감추었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 선물은 산타할아버지도 엄마도 아닌 바로 오빠가 넣어 준 선물이라는 것을….

난생처음으로 받은 선물, 어린 동생들 생각에 1년 내내 그 먼 길 걸으며 모은 용돈으로
오빠가 사 주었던 연필 한 타스와 바니사탕 한 봉지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추억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이숙자 님 / 85232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