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냄새


오늘 새벽, 버스정류장에서 난 잠깐 착각에 빠졌다. 새벽공기에서 묻어나는
냄새가 고2 그날의 새벽 냄새와 흡사했다.

그날은 내가 도시락을 잊었다. 아침, 아빠가 도시락을 들고 교실 앞으로 날
찾아오셨다. 아빠는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그런데 난 너무
화가 났다. 아빠가 내 옷을 입고 계셨기 때문이다. 소매가 닳아서 언제부턴가
나도 안 입고 아무렇게나 걸어 둔 잠바를…. 내 친구들은 그 잠바를 내가
작년까지 입고 다녔다는 걸 기억할 것이고, 소매 부분이 다 닳은 것도 잊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얼른 도시락만 받아들고 휙 돌아서
교실로 들어와 버렸다. 난 그날 종일 울었고, 물론 도시락도 안 먹었다.

공기 냄새 때문에 갑자기 버스정류장에서 그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빠가,
도시락이 그리고 그 노란 잠바가…. 이제 난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가끔은
교문 앞에 서 계시는 아빠를 보곤 한다. 아빠는 초라하게 서 계시고, 이제사
반갑게 달려가려고 하는데 달려가 보면 아빠는 안 계신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와 나란히 걷다가 가끔 시내에서 아이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시골에서 막
올라와 허름한 옷차림을 한 엄마는 아이들 눈에 띌세라 살짝 옆으로 비켜 서신다.
그럼 난 얼른 엄마 팔짱을 끼고 말한다. "얘들아, 선생님 엄마야."
아이들이 인사하고 지나간 뒤, 엄마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신다. 엄마와
팔짱낀 내 팔에서는 편안함이 전해 오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곧
그 걸음으로 아빠에게 달려가고 싶어진다. 아빠는 다 큰 애가 징그럽게
무슨 팔짱이냐고 하시겠지만, 어린아이처럼 매달리며 꼭 안아
드려야겠다 마음먹는다.

장완영 님 /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