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아시면…


어릴 적 우리 형제들이 서로 싸우거나 말을 안 들을 때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께서 아시면 야단 맞는다."

그 시절 우린 정신없이 싸우다가도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드셨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만 집에 계시면 착한 어린이가 되어 부지런히 공부하거나 동생들을
돌보았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께는 매를 맞은 적이 있지만 아버지가 매를
드시는 걸 본 일은 없는데도 우리에게 아버지는 참 엄하고 무서운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우리 가정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면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할머니는
"집안이 시끄러우면 아비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니 싸우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담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섯 형제가 올망졸망 한 집에서 살았지만
큰 말썽 없이 자란 것은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일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내 자식이니 알아서 잘 하겠거니, 아버지는 늘
그렇게 우리를 믿어 주셨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난 아이들을 키우며 좋은 엄마 되는 일이
힘들다는 걸 느낀다. 공부보다 다른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아이에게
무어라 한마디 하면 이내 자기가 알아서 다 하니 마음놓으라는 제법 어른스런
말로 아이는 상황을 비껴 나간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처럼
"너 그러면 네 아빠한테 야단 맞는다" 하면, 아이는 아빠랑은 오히려 대화가
통한다며 제발 그렇게 하라는 눈치이다.

"엄마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내 아들이 최고란 믿음이 왜 없지요?
엄마, 제발 나를 믿으시라구요."

내 품에 안겨 나를 필요로 하던 아들은 어느새 자라 내 품을 빠져 나가려
발버둥치고 있다. 버둥거릴 때마다 난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서운해하면서도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머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기에 매를 드시기 전에
'아버지'를 내세우셨던 것 같다.
나는 언제쯤이면 어머니의 지혜를 닮을 수 있을까?

정숙현 님 / 경기도 고양시 일산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