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주부

모든 시집간 딸들이 그렇듯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저도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오고 눈물이 앞선답니다. 제 친정은 완도에 속해 잇는
‘고금도’라는 육지 같은 섬입니다. 저희 엄마도 다른 섬아낙들처럼
엄청난 생활력과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며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전 결혼 뒤에도 친정에 가면 장롱이며 냉장고를 다 뒤져
온갖 좋은 것은 모두 싸들고 와 버리는 못된 딸이었지요. 그런
제게도 효도할 기회가 왔답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이 제가 완벽한 주부가 되어
갈수록 점점 더 꼬부랑 할머니로 변해 가시는 걸 느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제게 조심조심
말을 건네셨습니다. “백화점 옷 한 벌 입어 보고 싶은데, 사 줄 수 있겠니?”
그래서 저는 얼른 “내가 우리 엄마한테 예쁜 옷 한 벌 못 사 주겠어?
언제든지 올라오기만 하시면 백화점에 가서 꼭 사 줄게요”
하며 호언장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침 친척 결혼식이 있어 올라오셨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은근슬쩍 “자기야 우리 엄마 올라오시면 백화점 옷 한 벌 해 드리면 어떨까”
하고 슬그머니 운을 뗐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당신 마음 잘 아는데,
이번에 우리가 처남 결혼식이며 시골집 짓느라고 돈을 많이 썼잖아.
그렇다고 시시한 거 해 드릴 수도 없고 말야. 그러니까 이번 말고
다음에 해 드리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념할 수 없었죠.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당신 옷 사
줄 수 있느냐고 쉽게 말할 수 있겠어요. 물론 저 또한 직장생활을 하니까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얼마든지 사 드릴 수 있지만 사위가 직접 사 드린
옷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어 남편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편지였죠.

‘내 목숨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나의 하늘에게’로 시작되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다 읽고 난 남편은 빙그레 웃더니 그동안 저도 모르고 있던
비자금통장을 건네주던군요. “장모님께 예쁜 옷 최고급으로 사 드려”
하면서 말이에요.

내일이면 엄마랑 아빠랑 온갖 가지 음식 바리바리 싸 들고서 배타고 버스
타고 올라오시겠죠? 물론 백화점에서 예쁜 옷 사 입을 생각은
꿈에도 못하시고요. 사위가 사 드린 고운 옷 입고 좋아하실 엄마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합니다.

배수정 님 / 경기 성남시 분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