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감사
얼마 전 회사일로 어느 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불러도
인기척이 없고 문을 여니 살짝 밀리기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 한
아가씨가 젖은 머리로 거실로 나오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주방에 간 지
한참 만에 참외 세 개와 큰 부엌칼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걸음걸이도
말투도 영 이상하게 보여 내심 약간 긴장해서는 괜찮다며 과일을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깎아 드리고 싶은데 눈이 잘 안 보여서…”
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얼른 그녀 옆에 앉아 참외를
깎았고, 그 동안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작은 사고로 병원에 갔다가 다친 것보다 당뇨가
더 심각하다는 걸 알았답니다. 그때부터 투병생활을 했고 다리며 온몸에
종기가 나서 고름이 나오기도 하다가 급기야 일 년 전부터는 합병증으로
앞이 안 보이게 되었다더군요. 불쌍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는데,
그런 제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는 “난 행복해요!” 하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다리도 나아서 절단이라는 최악으로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며,
또 앞을 볼 수 있었던 때가 있어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사물들의 모양과
색깔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으니얼마나 좋으냐며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녀 나이 이제 겨우 스물세 살에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 마치 큰 성자를 만난 듯했습니다. 그녀는 몸이 안 좋아 성당에 가려면
남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그게 미안해 나기지 못한 지가 6개월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녀에게 그들은 봉사의 기쁨을 느끼며
돕는 것이니 돌아오는 일요일엔 지금처럼 밝은 목소리로 찾아와 달라는
전화를 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집에서만 지내는 그녀가 많이
안쓰러워 나오는 발걸음이 많이무거웠습니다. 하루 빨리 완치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온 몸으로 느꼈으면 합니다.

김영이 님 / 경기 화성시 안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