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학생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봉사활동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와 친구들에게 한적한 재활원센터를 알려 주셨다.

재활원센터를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우리는 원장실로 들어가 원장님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들었다. 원장님은 우리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치라고 했다.
처음엔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도 되고
배우는 학생이 어르신들이라 막막했다. 그런데 그 염려는 정말 열심히
배우려고 하시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노력하는 모습에서 말끔히 씻겼다.
옛날에는 못 배운 게 한이었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는 열심히 배우셨다. 오히려 옛날보다 여건이 나은 우리가 공부를
더 안 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못 쓰시던 분들이 일주일이 지나니까
받아쓰기도 잘하셨다. 어느새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정든 마음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서려는데 한 할머니가 고맙다며 집에 가서
밥이라도 먹자고 내 손을 잡으셨다. 하지만 친구들을 두고 혼자 갈 수도 없고,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갈 수도 없어 시간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할머니는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더니 얼른 바지춤을 뒤지시더니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내 주머니에 찔러 주셨다.

“학상, 그럼 이거라도 받아둬.”

돈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말씀 드렸지만 할머니가 너무나 섭섭해하시는
통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재활원센터를 걸어나오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할머니 거친 손의 따뜻한 느낌이 전해 오는 듯했다.

그 뒤 할머니를 다시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할머니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이번에 가면 꼭 밥 먹을게요.”


권영섭 님 / 부산 남구 문현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