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늦은 오후 동생과 길을 걸었습니다. 한때는 네 살만큼의 차이가
퍽 넓게 느껴지곤 했지요. 내가 중학생이 될 즈음 그 녀석은 아직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나이 스물이 되어 내가 화장을 배울 때쯤엔
짧은 단발을 한 여중생이고 보니 어리게만 보일 수밖에요.
더욱이 몸이 약하신 어머니 때문에 항상 내가 동생을 목욕탕에
데리고 다녀야 했고, 그렇게 목욕탕에 가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하게 동생 목욕을 시켜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목욕탕에서 친구라도
만나면 내게 농담 섞인 말투로 '네가 꼭 엄마 같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어느덧
제 키만큼 자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습니다.
오늘 동생과 함께 걷던 중에 꽃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꽃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백합을 바라보며 며칠 전의 일이
일어서기를 합니다. 동생은 그 꽃집에서 백합을 덤으로 받았다며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언니, 세상은 참 살만 한 곳인 것 같아. 공짜로 꽃을 얻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너무나 행복한 일인 것 같거든."
그때는 동생의 말에 그냥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꽃 한
송이에 감동이라도 받았나 싶어 "기분 좋겠다"는 짧은 대꾸만 해 주었지요.
그런데 꽃집을 지나치며 보게 된 백합과 꽃집 쇼윈도에 비춰진 동생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보니 이제는 결코 이 녀석이
어리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세상과 사람들이 있듯이 이제는 이 녀석도 나처럼 알고
느끼고 아파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비누질로 온몸을 엄마처럼 목욕시켰던
그날은 한참 지난 옛날임을 이제는 정말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생은 그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미라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