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44세 때 <7인의 사무라이>가 개봉되던 날 딸을 낳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만이 아니라 딸도 제작했다고 놀림을 받았지만
그는 영화만큼이나 딸 가즈코를 아꼈다.

가즈코는 어릴 적부터 영화 스태프와 배우들의 무릎을 기어다녔고,
“영화를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자랐으며
14살 무렵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항상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였지만 가즈코에게는 그냥
‘아버지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여느 아버지와 딸처럼 전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에서는 <엑소시스트>라는 공포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가즈코는 아버지의 손을 꽉 잡고 그 무서운 영화를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즈코는
너무 무서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버지는 그건 영화라며
허허 웃었지만 딸의 불안함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었다.

그날 밤 가즈코가 잠자리에 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 웬일이세요”
“그렇게 무서운 것을 봤으니 네가 어떻게 돼지 않았을까 걱정이 돼서 왔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한참 동안 딸의 방에 앉아 있다 나갔다. 그런데
그날 밤 가즈코는 살며시 문을 여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섯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더 문을 열어 봤을지도 모르지만 가즈코가
잠이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