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일어서는 딸에게


작년 여름 무더위에 한창 지쳐 있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학생 집 맞죠? 여기는 ○○파출소입니다. 따님이 슈퍼에서
담배를 훔치다 걸렸습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착하디 착한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며 정신없이 파출소로 달려간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조사를 받고 있는 딸아이를 볼 수 있었다.

“엄마, 내가 피우려고 담배를 훔친 게 아니라….” 울먹이는 딸아이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맞벌이를
핑계삼아 살뜰하게 챙겨 주지 못했는데도 성실하고 바르게 커 주는
아이에게 항상 감사해 하며 살아 왔었는데….
그날 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혹시나
싶어 책상 서랍 속에 있던 딸아이의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월 ○일 운동장 한 쪽에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이 내팽개쳐졌다.
선배가 너무나 밉다. 여기저기 흩어지는 밥알을 보니 고생하시는
엄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월 ○일 학교에선 따돌림당해 외롭고 집에선 모두들 바빠 외롭다.
나는 언제나 혼자다.
○월 ○일 새로 산 신발을 뺐겼다.엄마가 파출부해서
번 돈으로 사 주신 건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월 ○일 하교길이 무섭다. 왜 나만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은 후문으로 몰래 도망 나오다 들켰다.
내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월 ○일 선배들의 발길질과 주먹질이 무서워 난생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나는 이제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다.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애써 참으며 딸의
잠옷을 살짝 들춰 보았다. 아니 세상에! 뽀얀 허벅지를 시퍼렇게
물들인 멍 자국이 한눈에 들어왔다.
투정 한 번 안 부리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자꾸 돈타령에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을 때 왜 좀 더 신중하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한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무심했지? 정말 미안해.’ 나는 잠든 아이
머리맡에서 한참을 눈물로 지키고 있었다.
지금 딸아이는 휴학계를 내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학을 하는 내년이면 괴롭히던 선배들이
졸업을 하고 없다는 것이다.그래도 언제 어디서 또다시 희생양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아이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잠시 방황은 할지언정 곧 똑바른
걸음으로 다시 설 수 있으리라고.


김은혜 님 | 경북 성주군 성주읍